한국을 떠나 오기전까지 다니던 마지막 직장은 <듀폰 코리아> 였다.
입사 초기에 회사 사보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온 적이 있었다. 내용이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한가지 인상적인 질문이 있었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어떤 식으로 하고 있나요?.’ 뭐, 이런 질문으로 생각난다. 그때 대답한 요약은 아래와 같았던 것 같다.
‘전 아이들에게 공부를 잘 하라고 주문하지 만은 않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만 파하면 모두 각종 학원으로 달려 가는데 전 거기에 별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그냥 집에서 저들 하고 싶은걸 하도록 놔둡니다.
고교 일년 시절, 동네에 있는 작은 개척 교회를 다니게 되었었다. 침례교회였는데 클리포드 머기라는 미국인 선교사가 개척을 하신, 막 2년째 되는 아주 작은 교회였다. 그 선교사에게서 영어 설교를 들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대했지만 내게 그 나라는 절대로 너무도 먼 나라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마치고 첫 직장인 <태평양 화학>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총 8년 정도 근무를 했는데 아마 내가 대리라는 직책을 달고 있을 무렵, 하루는 어떤 동료가 내게 말했다.
‘이 대리님은 이 회사에 있을 사람이 아닌거 같아요. 아니, 그것보다는 한국에 계실 분이 아닌거 같아요’
(엉, 이건 뭔소리지?)
나도 그때 나름 잘 나가는 편이라 회사가 보내주는 해외연수도 두번이나 다녀왔고 젊은 나이에 곧 과장도 달건데 이 사람은 왜 내게 이런 소리를? 혹 내가 외계인? ㅎ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어떤 나라가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
‘미국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대리님은 그게 어울리는거 같아요.’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내겐 습관이 하나 있었던 거 같다. 뭔가 하나에 막히면 난 거기서 빠져 나와 나를 전혀 엉뚱한데 갖다 놓고 그 신세계에서 시간을 보내곤 하던...뭔가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어떤 그림이 내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거 같다. 아마도 이것이 내 동료의 눈에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대략 5-6년 후 난 직장을 <듀폰 코리아>로 옮기게 되었고 입사한 그해 말 즈음엔 난 식구들과 함께 웨스트 버지니아의 어느 <듀폰> 플랜트에서 장기 연수차 떠나 미국에 살고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1996년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 호주를 거쳐 2002년 미국에 들어와 미국 시민권자로 17년째 살고 있는 나를 오늘 아침도 발견하고 있다.
사실은 제목의 '신기하다'는 정작 그 내용은 아직 꺼내지도 못했다. 이제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해야 해서 다시 후기로 써야 할 모양이다.
사진 설명: 아래 사진은 <듀폰 코리아>의 전체 액티비티중 한 컷. 뒷 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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